주민 100% 재정착 추진하는 영등포 쪽방촌 개발, ‘꿈’은 이뤄질까

2020-02-24 | 작성자 차완용 | 조회수 372 | 추천수 7
- 임대주택 중심 ‘공공주택 개발 계획’ 수립한 정부·지자체
- 종로·중구·용산 쪽방촌도 기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가난 중에도 지독한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이들은 여러 지역을 돌고 돌아 특정 지역에서 터를 잡는다. ‘쪽방촌’이다.

화려한 도심 뒤편의 좁디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에 3.3㎡ 남짓한 공간의 방들이 모여 있다. 냉난방은 이뤄지지 않는 게 당연하고 벽지는 온통 곰팡이투성이다. 화장실도 따로 없어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가 찾아오면 ‘열악한 주거 환경’,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도 발생한 시기라면 위생 취약 지역으로 분류돼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은 쪽방촌을 떠나지 못한다. 이곳이 마지막 희망이자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쪽방촌 집은 노숙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진입하는 첫 거처이자 노숙으로 가기 바로 전 단계에 선택하는 마지막 거처다.

◆ 2023년 주거·상업·복지타운으로 탈바꿈



쪽방촌은 서울에 5곳이다.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갈월동, 영등포구 영등포동·문래동 등이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자료에 따르면 이들 쪽방촌에는 2018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316개의 쪽방 건물에 3855개의 쪽방이 있고 3183명이 거주하고 있다. 거주민 중 54%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전체의 3분의 1 정도는 65세 이상의 홀몸노인으로 파악된다.

쪽방촌을 이루는 건물들은 대부분 50년 정도 됐다. 개발이 절실하다. 하지만 쪽방촌이 개발되면 갈 곳이 없는 거주민들 때문에 그동안 개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우선 영등포 쪽방촌 개발을 시작으로 다른 지역들도 차례대로 정비하기로 했다. 쪽방촌 토지 소유자들과의 보상 등의 문제가 어렵긴 하지만 정부는 최대한 개발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도 세웠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영등포 쪽방촌 개발안은 일대를 허물고 공공 임대 아파트와 민간 상업·주거 시설이 공존하는 역세권 주거 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쪽방촌 주민을 내쫓지 않고 임대주택에 정착하게 하는 공공 주택 사업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영등포구는 1월 20일 영등포 쪽방촌을 주거 단지로 정비하는 내용을 담은 ‘공공 주택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영등포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 사업 시행자로 참여하는 이 사업은 쪽방촌 주민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이들을 재정착시키는 데 우선 초점을 맞췄다.

영등포역과 인접한 쪽방촌 일대 1만㎡는 1·2구역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개발된다. 쪽방촌 주민들은 2구역에 마련되는 임시 거주 시설로 이주하고 1구역이 먼저 개발된다. 2023년까지 쪽방촌 주민을 위한 370호의 영구 임대주택과 청년·신혼부부용 행복주택 220호가 들어서게 된다. 쪽방촌 주민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한 뒤 2구역 택지는 민간에 분양해 개발이 진행된다.

이 공공 주택 사업이 완료되면 쪽방촌 주민 주거의 질은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현재 1.65~6.6㎡ 크기의 쪽방에 살면서 월평균 22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했던 주민은 16㎡ 새 아파트에 월 임대료 3만2000원(보증금 161만원)을 내고 살 수 있게 된다.

또 이들의 자활을 도왔던 광야교회·요셉의원·토마스의집·영등포희망지원센터가 돌봄 시설 형태로 함께 자리 잡는다. 쪽방촌 등 비주택 거주자들이 기존의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다.

행복주택 단지에는 입주민과 지역 주민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국공립 유치원과 도서관 등도 들어선다. 민간이 개발하는 상업 지구에는 주상 복합 단지와 오피스텔, 민간 분양 아파트 600호가 공급된다.

쪽방촌 주민이 고립되지 않고 쾌적한 주거 단지에서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소셜 믹스’가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곳이 서울 3대 도심인 영등포역 인근인데다 2024년엔 신안산선까지 개통될 예정이어서 행복주택, 분양 아파트에도 수요가 몰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계속된 개발과 좌절, 기대와 우려 공존

서울 영등포 쪽방촌 골목(왼쪽 사진)과 남대문 쪽방촌의 거주민이 겨울을 보내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 상당수가 이번 영등포 쪽방촌 사업 계획에 거는 기대가 크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영등포 일대의 주거·상업 환경이 정비되고 주민 100%가 재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주민 100% 재정착 계획이 수립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혁신적인 구상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험난하다. 그동안 영등포 쪽방촌 개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먼저 추진됐던 방식은 2000년대 초 주거 복지 개선 사업이었다. 공공 임대주택으로 주민 이주를 돕거나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 방식이었다.

일부 쪽방촌 거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됐던 이 개발은 450만~500만원에 이르는 공공 임대주택의 보증금 문제와 고령자나 건강 문제로 일자리가 있어도 일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대부분이어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12년에는 영등포 쪽방 리모델링 사업도 추진됐다. 2015년까지 541개의 쪽방 중 441개의 쪽방을 리모델링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노숙자 거주 시설을 만든다’는 영등포동·문래동 일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결국 끝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사업 초기 집주인들에게 동의를 얻었던 5년간 임대료 동결이 올해로 끝나면서 임대료 인상이 예고되고 있어 상당수의 쪽방촌 거주민들이 내몰릴 처지에 놓인 상황이다.

보상 문제도 쉽지 않다. 현재 개발 예정 사업지에 해당하는 140여 개 토지 필지는 25명이 지분을 공동 소유하고 있고 이 중 외국인도 9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5명이 지분을 공유한 토지의 마지막 지분을 취득한 2명은 2018년 8월 소유권을 얻었다.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토지 수용 과정에서 진통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개발 호재가 있는 영등포는 지속적인 보상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쪽방촌 개발 발표에 앞서 2018년에는 39층 호텔과 22~29층 업무 시설을 짓는 집창촌 구역 재개발을 발표했지만 보상 문제로 현재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영등포구청 측은 이 지역을 민간 주도 개발로 유도하되 필요한 행정 지원을 최대한 한다는 계획이다. 조합이 설립되면 재개발 사업 인허가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토지주들도 재개발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상업 지역이어서 토지 가격이 일반 주거 지역보다 비싸 보상비 협상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쪽방촌 거주민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싼 임대료에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과연 이 계획이 실현될지, 동네 주민들과의 마찰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거주민 김 모 씨는 “1년 전 서울역 앞 쪽방촌이 개발되면서 이곳으로 쫓겨 왔는데 또 그렇게 될까봐 걱정된다”며 “개발하는 사람들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소리쳤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6년째 살고 있다는 진 모 할머니는 “그냥 지금이 좋은데 좋은 데로 이사 가봐야 사람들이 (나를) 욕할 것”이라며 개발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 나머지 쪽방촌 4곳 개발 현황은

영등포 쪽방촌 개발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성공 여부에 따라 다른 4곳의 쪽방촌이 개발 추진되거나 계획된 사업이 변경 또는 탄력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등포를 제외한 다른 4곳의 쪽방촌 중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종로구 돈의동이다.



2015년 3월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국토교통부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시행한 ‘도시 취약 지역 생활 여건 개조 사업’에 돈의동이 선정되면서 사업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근본적인 개발이 아닌 도로 정비, 집(쪽방) 부분 수리, 공동체 시설 설립 등에 머무르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이 밖에 중구 남대문로5가,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은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을 통한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중구 남대문로5가는 지난해 10월 ‘양동 도시 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 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양동’은 남대문로5가동에 편입돼 사라진 지명이다. 양동 재개발 구역 정비 계획 변경안은 ‘소단위 정비형’ 방식을 추진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공연장·전시장 등 도심 내 업무 종사자를 위한 아동 관련 시설, 도심 관광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소규모 호텔 등’이 권장 용도로 제시돼 있고 주거 개발은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쪽방촌 거주민들의 반발로 사업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은 지난해 5월 도시 환경 정비 사업 제안이 처음 진행됐다. 종로구가 붕괴와 화재 위험에 상시 노출된 쪽방과 저소득층 노인의 주거 복지를 위해 청계천변 공공 용지에 원룸형 안심 공동 주택 건립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 서울시에 제안했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이 아닌 쪽방 주민 등 최하 저소득층이 입주할 수 있는 공공 임대주택을 자치단체가 제안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구는 전용면적 14.7㎡에 전용 화장실과 취사 시설, 발코니까지 갖춘 지하 2층, 지상 10층 규모의 ‘쪽방·저소득 어르신 공공 임대주택’을 건립해 300가구가 살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주거기준법상 1인 가구 최저 주거 기준을 충족한다. 외부와 단절된 쪽방촌과 달리 이곳에서는 지속 가능한 생활과 사회로의 자활을 촉진하도록 공동 작업장, 기술교육원, 사회적 경제 활동 공간, 상담소 등 시설을 주택 단지 내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구에 따르면 종로구 창신동 청계천 인근의 삼일아파트 1~6동이 공공 임대주택 부지로 물망에 올라 있다. 국가 소유 토지이기 때문에 이후 보상 절차 등에서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1969년 시가 조성한 시민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안전 문제로 아파트 부분은 철거되고 1, 2층 상가만 남아 있다. 현재 해당 부지는 2007년 청계천 복원 계획에 따라 공원녹지 지역으로 지정돼 개발할 수 없는 상태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공공 주택 사업을 위해 공원 녹지 지정 해제를 일부 검토 중이다.

영등포·종로·중구 지역 쪽방촌과 달리 용산구 쪽방촌에는 이렇다 할 개발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용산구 쪽방촌은 서울 쪽방촌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고 거주민 역시 1054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쪽방촌 거주민 수 2위 지역은 중구(717명), 그 뒤를 이어 종로구 돈의동(570명), 영등포구(514명), 종로구 창신동(328명)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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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한국경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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