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분투기…‘내 집 마련은 사치’

2015-03-09 | 작성자 김병화 | 조회수 9,992 | 추천수 129

빠듯한 전세 자금 들고 한 달 내내 끝없는 부동산 순례


“결혼을 생각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요? 두말할 것 없이 ‘집’이죠. 최소한 전셋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어야 결혼 문턱이라도 밟아 볼 텐데 저금리와 전세 물량 부족으로 전세가율(전셋값 대비 매매가격 비율)이 80~90%를 웃돌고 있거든요. 평범한 샐러리맨 월급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고….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입니다.”(서울 마포 A설계사무소에 근무하는 노총각 과장 김모(41) 씨)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선남선녀들의 주거 고민이 극에 치닫고 있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은 주거 장벽에 가로막혀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결혼을 포기해 버리는 이가 적지 않다. 달콤한 신혼을 기대했던 예비 신혼부부들도 신혼집 마련에 진땀을 흘리며 단맛보다 쓴맛을 먼저 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매번 뒷북치는 정책들만 쏟아내며 뒷짐만 지고 있다.

평범한 맞벌이 한 신혼부부의 ‘신혼집 마련 분투기’를 통해 결혼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신혼부부들의 주거 고민을 엿봤다.


집주인, 전세자금 대출에 난색
2014년 1월, 1년간 촉촉한 사내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한 나지민(가명·32) 씨는 본격적인 신혼집 마련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총알(자금)’은 대략 1억2000만 원. 그동안 나 씨와 예비 신랑이 저축해 놓은 돈과 부모님의 지원금을 합치면 4000만 원 정도이고 나머지 8000만 원은 대출이다. 부부 합산 소득이 5500만 원을 넘지 않아 전세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서울 광화문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지하철 5호선 라인으로 물색하기 시작한 나 씨는 말로만 듣던 전세 품귀 현상을 직접 겪으며 진땀을 흘렸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나 씨에게 고스란히 증발하는 월세는 용납되지 않았고 차라리 아파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빌라로 눈을 돌린 나 씨가 신혼집을 고르는 기준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주택 규모는 49㎡(15평) 정도에 방은 2개, 출산 계획도 세운 만큼 거실은 넓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첫째 물망에 오른 신혼집은 대학로에 자리한 A빌라(47㎡)였다. 지하철역과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방 2개에 거실도 크고 나쁘지 않았다. 입주를 결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계약하기 위해 집주인과 대면한 나 씨. 일단 집주인에게 대출 의사를 밝혔다. 전세 자금 대출의 특성상 집주인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절차가 다소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주인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3000만 원 이상 대출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 세입자가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은행에서 내용증명을 받은 뒤로는 대출을 많이 받는 세입자를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맞벌이를 한다며 통사정을 해 봤지만 집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도배조차 해줄 수 없고 계약금 2000만 원을 다음날까지 입금하라고 쐐기를 박았다.

결국 계약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나 씨는 다시 서대문·마포·압구정·광화문 인근 부동산 순례에 돌입했다. 주말마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신혼집 찾기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충정로역 인근에 자리한 B빌라를 발견했다. 48㎡에 전세 보증금 1억2000만 원으로 집의 규모와 가격은 A빌라와 비슷했다. 주방이 조금 작긴 했지만 지하철역과의 거리는 5분 거리로 오히려 A빌라보다 가까웠다. 집주인은 대출을 흔쾌히 허락했고 도배도 해주기로 약속했다. 나 씨는 2주 뒤 B빌라로 이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나 씨는 최근 첫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깜빡 잊고 있었던 주거 고민이 또다시 나 씨를 엄습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 내년 봄이면 전셋값을 올려주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다음 달부터 회사에 출근하기로 한 나 씨. 주거 불안에 벗어나지 못하는 나 씨에게는 육아휴직도 사치였다.


행복주택도 ‘그림의 떡’
나 씨는 결코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맞벌이 신혼부부다. 대다수 신혼부부들이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힘들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주거 고민에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비혼·만혼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거 안정을 포기하고선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정부도 2월 6일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2016~2020년) 수립 방향을 논의하면서 만혼율 감소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뒤 ‘신혼부부 주거 안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에 따른 신혼부부 주거 안정 대책은 ▷신혼부부 대상 전세 임대 지원 ▷행복주택 공급 ▷주택금융 지원 등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신혼부부가 원하는 주택을 선정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 계약을 하고 해당 부부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전세 임대’ 지원을 연 3000호에서 4000호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신혼부부 전세 임대는 전체 매입 전세 임대 물량의 12%를 차지(2015년) 해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형 주택 공급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또한 전체 입주자의 80%를 신혼부부 등 젊은 계층으로 선정하는 행복주택을 2017년까지 14만 가구 공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혼부부를 비롯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2.2~3.2%의 최저금리를 지원하는 등 신혼부부가 주택 구입 및 전세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해택을 부여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이미 추진 중인 정책들을 재탕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신혼부부 전세 대출만 해도 부부 합산 연소득이 5500만 원 이하일 때만 이용할 수 있어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조차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전세 보증금의 70%까지만 지원돼 나머지 30%는 스스로 마련해야 하고 앞서 나 씨의 사례처럼 전세 대출 자체를 꺼리는 집주인들이 많다.

이 밖에 전세 임대를 활용하거나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바늘구멍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최근 입주 요건이 완화된 행복주택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장은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도모해 만혼율을 낮추고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밑그림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더 많은 신혼부부가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주택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고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등 개선할 부분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병화 기자 hkfor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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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한국경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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