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월세 시대’…그런데 전세가 그리워

2015-02-09 | 작성자 김병화 | 조회수 9,641 | 추천수 128

임대창 시장 패러다임 변화…‘속도 조절 필요’ 목소리도

바야흐로 월세 시대다.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월세로 갈아타는 세입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정부는 그럴싸한 대책들을 쏟아내 보지만 혼란만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대한민국 주택 임대차 시장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혼비백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 양천구 화곡동 A아파트(111㎡)에 살고 있는 강은진(32) 씨는 요즘 내년 전세 재계약을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강 씨는 지난해 7월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 3억 원을 지불하고 이곳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이후 전셋값이 폭등하며 최근 옆집은 4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1년도 채 안 돼 무려 1억5000만 원이 뛴 것이다. 전셋값이 오르기 전에 계약하길 잘했다는 기쁨도 잠시, 내년 재계약에 대한 공포가 강 씨를 엄습했다. 부지런한(?) 집주인은 벌써부터 임전 태세다.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 수준 만큼 전셋값을 올려주든지 월세로 전환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 당장 1억5000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월세로 전환하자니 150만 원 이상의 월셋값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두통약을 사러 약국으로 향하는 강 씨다.

비단 강 씨만의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전세라도 선택할 수 있는 강 씨는 다행일지 모른다. 세입자들의 ‘구세주’ 전세제도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기로에 서 있다. 대다수 세입자들은 내 집 마련을 꿈이 산산조각 난 채 월세로 내몰리고 있다. 임대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라며 가벼이 넘어가기에는 충격이 너무 크다. 혼돈 속에 월세 시대의 문이 열려 버렸다.


내 집 마련 꿈 접은 젊은 세대
1월 22일 전국의 전월세 가구 가운데 월세 가구의 비중이 55.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7~9월 국토연구원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14년도 주거 실태 조사’ 결과다.

월세 비중은 2010년(49.7%)부터 꾸준히 상승세다. 2012년에는 50.5%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전세 비중을 앞서더니 결국 지난해 55.0%를 찍었다. 이는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최고점이다. 특히 월세 비율은 전년보다 4.5% 포인트 늘어난 반면 전세 비중은 4.5% 포인트 떨어져 그 격차를 더욱 벌렸다.

이에 대해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전셋값 고공 행진에 못 이겨 월세로 돌아선 세입자가 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대한민국은 이제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뉘게 됐다”고 분석했다.

주택 보유 의식도 달라졌다. 이번 조사에서 ‘꼭 내 집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사람의 비중은 79.1%로 2010년보다 4.6% 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34세 이하의 응답률이 같은 기간 80.1%에서 70.9%로 10% 포인트 떨어지며 모든 연령대 중 가장 크게 감소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월세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다.


미운 오리로 전락한 ‘전세 제도’
월세 시대를 말하기에 앞서 전세 제도를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세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부동산의 소유자에게 일정한 금액을 맡기고 그 부동산을 일정 기간 빌려 쓰는 것으로, 매매가 아닌 대여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 집에 1억 원의 전세 보증금을 맡기고 전세 입주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1억 원을 되돌려 받는 식이다.

전세 제도의 탄생은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세는 ‘임대차와 소비대차의 결합체’ 개념으로 관습상 이뤄지며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정됐다. 이후 6·25전쟁을 거치며 주택 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전세는 산업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도시로 인구가 급격히 몰리며 대대적인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가운데 전세 계약이 줄을 이었다. 그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으며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주택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금리가 높았던 그 시절, 전세는 집주인(임대인)과 세입자(임차인) 모두가 ‘윈-윈’하는 최고의 임대차 제도였다. 집주인은 전세를 끼고 소자본으로 주택을 매매할 수 있어 시세 차익을 극대화하고 남은 자금으로 또 다른 집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세입자는 매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세 보증금만 지불하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계약 기간 만료 후 손실 없이 돌려받은 전세 보증금을 주택 구입의 밑천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돌입하고 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특히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전세의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한국은행 경제 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정기예금 금리는 2011년 12월 3.77%를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 현재는 2.0%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반면 월세 이율은 서울 기준 0.74%(연 8.8%) 예금 금리보다 연 7% 정도 높은 수준이다.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를 받아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게 훨씬 유리해진 것이다.


서울시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걸린 시세표.


경기도 부천시 중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3억 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70만~80만 원 선인데 이는 1억 원을 그냥 은행에 넣어 뒀을 때보다 수익이 2~3배는 많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백조에서 순식간에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해 버린 전세. 전세 공급 물량이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세입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반전세(보증부 월세)나 월세로 전환했다. 바로 월세 시대의 탄생이다.


전세 시장 추월…문제는 ‘속도’
전세 시대의 몰락과 월세 시대의 돌입을 단기적인 추세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전세가 활성화되려면 1차적으로 집값이 상승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국내 경제 여건상 불안감이 큰 게 사실이다. 또한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전세 물량 감소와 전셋값 상승세도 계속될 전망이다. 월세 시대가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장기적인 흐름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사실 대다수 해외 국가들은 집을 매입하지 않을 경우 주거 사용료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대여 형태로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국내의 월세 개념이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월세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월세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상당한 액수의 목돈을 보증금으로 맡겨야 하는 반면 일본은 대개 2~3개월 치의 집세를 보증금 명목으로 내는데 계약 만료 후에도 돌려받지 않는다. 계약 기간은 보통 2년으로 한국과 동일하다.

중국은 부동산 자체에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땅은 국가 소유이면서 일반 시민은 땅을 70년간 이용할 수 있는 사용권을 가질 수 있다. 이 기간이 만료되면 그 부지를 다시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즉, 부동산 임대인은 사용권을 가지고 임차인에게 다시 대여해 주는 방식이다. 중국의 임차인은 일반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선금으로 월세를 낸다. 입주 시 지불하는 보증금은 보통 한 달 치 월세 수준이다. 이 같은 해외 사례를 예로 들며 일각에서는 월세 시대의 시작을 주거 문화의 선진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임대차 시장에 시작된 패러다임의 변화,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월세로 내몰린 서민들은 늘어난 주거비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올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 김모(33) 씨는 최근 신혼집을 마련했다. 당초 김 씨는 건강이 좋지 않은 신랑을 고려해 신랑의 회사 근처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인 가운데 가끔 나오는 물건은 가격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결국 월셋집을 구하게 된 김 씨의 표정이 어둡다. 월세에 관리비 등을 합치면 매달 100만 원 이상의 현금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상황. 김 씨는 당분간 맞벌이를 하기 위해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김 씨만이 겪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월세를 내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월세로 살면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사느냐는 하소연도 들린다. 높은 월셋값은 서민들에게 가혹할 따름이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직 월세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경희 닥터아파트 연구원은 “임대차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로 서민들의 부담감이 커지고 이는 곧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예상보다 빠르게 월세 시대에 돌입한 만큼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전세 대책’ 빠진 정부 정책
사실 정부도 월세 시대의 시작을 인정하고 이에 대비한 다수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웬일인지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책’을 통해 저소득층을 위한 월세 대출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또 월세 세액공제 대상자도 늘렸다. 또한러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 임대주택에 반전세로 사는 세입자들이 주택기금으로부터 보증금을 대출받을 때 적용되는 이율(현행 2%)도 낮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정부는 ‘기업형 임대주택’ 카드를 꺼냈다.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월세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 대책 어디에도 전셋값 안정을 위한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급작스럽게 월세 시대를 맞이한 서민들에게 여전히 전세는 중요한 존재다. 전세를 생각하지 않은 맹목적인 월세 지원 대책은 자칫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태섭 실장은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완충장치 마련은 물론 안정적인 전세 공급 등을 통해 월세 시대를 맞은 서민들의 고통을 완화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월세냐 매매냐, 그것이 문제로다
미친 전셋값, 깡통 전세, 전세 종말….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이 단어들은 월세 시대의 혼란에 빠진 서민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전세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전셋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렇다고 월세를 살자니 매월 현금 지출의 부담에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져만 간다.

‘차라리 집을 사 버릴까.’ 일련의 상황 속에서 가여운(?) 서민들은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정부의 토끼몰이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자금력과 앞으로의 경제 능력 등을 고려해 집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전셋값 상승과 깡통 전세 문제 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최근 집주인들이 너도나도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추가적인 전셋값 상승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기조는 차라리 집을 사라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2개월 연속 70%를 넘어선 가운데 월세나 반전세는 ‘득’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어느 정도 자금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입지와 분양가(매매가)를 따져보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매매로 갈아타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팁. 아파트 매매 시에는 기존 아파트보다 신규 분양 시장에 먼저 눈을 돌려볼 때다. 최근 신규 분양 중에는 새 아파트라는 장점은 물론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와 가격 경쟁력까지 높은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경기 침체로 내놓지 못했던 분량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수요자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양 팀장은 입지와 분양가 경쟁력을 갖춘 단지를 중심으로 청약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오는 3월부터 1순위 자격 조건 완화 등 청약 제도가 달라지는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며 “현재 1순위 청약통장을 가지고 있는 무주택자라면 지금이 베스트”라고 귀띔했다.


김병화 기자 hkfor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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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한국경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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