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묘, 철거할 수 있을까

2018-03-26 | 작성자 사봉관 | 조회수 1,769 | 추천수 51
-2000년 개정된 ‘장사법’ 이후 설치된 분묘는 철거 요구 가능



[한경비즈니스=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여 년 전 원주시에 있는 임야(이하 ‘이 사건 임야’)를 상속받은 A는 최근 위 임야 인근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많이 오르자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이를 매도할 생각이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임야에 설치된 분묘 4기를 철거해 주면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이 사건 임야가 원래 문중의 선산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위 문중 시조의 분묘 1기(이하 ‘1분묘’)가 오래전에 설치돼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위 임야 인근에 살고 있던 마을 사람의 후손 B가 1995년께 그 아버지의 분묘(이하 ‘2분묘’)를, 위 문중의 종손 C가 1999년께 그 아버지의 분묘(이하 ‘3분묘’)를, 2002년께 그 어머니의 분묘(이하 ‘4분묘’)를 각각 설치했다.

◆분묘 가치 변했지만 신성함은 여전

B는 현재까지 20년 이상 2분묘를 관리해 왔다. C는 위 문중의 종손으로, 선대부터 계속 관리해 온 1분묘를 관리해 왔고 3, 4분묘를 설치한 이후 현재까지 이를 관리해 왔다.

한편 B와 C는 2, 3, 4분묘를 설치하면서 A의 아버지나 A의 명시적인 동의나 승낙을 받지는 않았다. A는 B와 C에게 위 각 분묘의 철거(굴이)를 청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오랜 기간 동안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설치한 것은 물론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토지를 양도하면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는 한 분묘기지권을 취득하는 것을 관습으로 판시했다.

또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했어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고 이를 등기 없이 제삼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도 관습으로 판시했다.

그런데 2000년 기존의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해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은 분묘의 설치 기간을 제한하고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당시 아직 20년의 시효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분묘도 종래 대법원이 인정해 온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에 관한 관습’을 적용할 수 있는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최근 위와 같은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은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판시했다.

과거와 달리 주택 단지나 공업 단지의 조성 등과 같이 임야를 개발하는 곳이 많아지고 그 거래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임야의 경제적 가치 및 그 소유권을 보호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반면 임야에 설치된 분묘는 보호 대상이라기보다 임야의 개발이나 거래에서 커다란 장애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나아가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가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전국의 묘지 면적이 계속 증가해 자연경관이나 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생활 공간의 부족 현상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법원(다수 의견)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분묘는 쉽게 세우고 쉽게 철거할 수 있는 일반 공작물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되는 정신적 가치를 가진 신성한 장소’라고 인식하고 있다.

분묘는 망자에 대한 슬픔과 존경을 담아 두고 나타내는 숭모의 장소로 존중돼야 하므로 쉽게 그 철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 인식과 장사법 부칙에서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들의 적용 시기에 관해 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후 최초로 설치된 분묘부터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위와 같이 판결했다.

◆분묘기지권의 기준은 ‘망부석’

이 사건은 20년 이상 설치·관리돼 온 1, 2분묘에 관해 각각 B와 C가 해당 분묘 기지에 대한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했다. 3분묘는 장사법 시행일 전에 설치됐으므로 C가 2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분묘 기지를 점유하면 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설치된 지 20년이 경과되지 않았으므로 A로서는 분묘 소유자인 C에게 분묘의 철거(굴이)를 구하거나 그 점유 부분의 인도를 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장사법 시행 후 설치된 4분묘에 대해서는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이 인정될 여지가 없으므로 A는 4분묘 설치, 점유자인 C에 대해 그 철거(굴이)를 청구할 수 있다.

한편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면 그 범위는 어떻게 정해질까. 분묘기지권은 분묘의 기지 자체(봉분의 기저 부분) 뿐만 아니라 분묘의 수호 및 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분묘의 기지 주위의 공지를 포함한 지역까지 미치는 것이다. 확실한 범위는 구체적인 경우 각각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

만약 통상 일방이 분묘 철거 소송을 제기하면 상대방이 분묘기지권 확인의 소를 반소로 제기하고 법원이 현장 검증 등을 통해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게 된다. 실무상으로는 상석 및 망부석 등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용어 설명

분묘기지권 :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 소유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고 토지 소유자나 제삼자의 방해를 배제할 수 있는 관습상의 물권이다. 분묘기지권은 봉분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에 한해 인정되고 그 특성상 등기 없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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