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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경제학

2013-10-26 | 작성자 박원갑 | 조회수 12,867 | 추천수 163

주지하다시피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100년 이상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요자 입장에서 메리트가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장 큰 메리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다. 대체로 주거비는 전세가 가장 싸고, 그다음 자가(自家), 마지막으로 월세다. 선진국 사람들 시각에서는 집값의 70~80%를 주인에게 맡겨놓고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는 전세세입자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나름의 주거비를 아끼려는 심리들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세시장은 너무 자주 요동을 친다는 점이다. 사실상 전세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변동성이나 불안정성이다. 전세시장은 전세난역전세난을 반복한다. 전세공급이 모자라 수요자인 세입자들이 고통을 겪는 것이 전세난이라면 공급이 넘쳐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것이 역전세난이다. 월세시장은 이처럼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가령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원의 임대료를 받던 집주인이 갑자기 1000만원에 60만원으로 올려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세의 경우 3~4년 새 값이 곱절 이상 뛰는 경우도 많다. 왜 전세시장만 유독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가?

  <전세가 불안정한 것은 그 자체가 금융이기 때문>
전세는 임대수익 개념보다는 금융, 특히 사금융에 더 가깝다. 전세의 불안정성이 큰 것은 그 자체가 금융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가 확산된 이유를 보면 전세가 왜 금융성격이 강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서도 존재했다는 전세제도의 본격적인 발달은 1970년대 이후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왜곡이 전세제도의 발달의 배경으로 꼽힌다. 농촌인구들이 대거 대도시로 몰려 주택수요가 급증했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소비자금융을 통제하면서 개인들은 돈을 빌릴 방법이 없었다. 경제개발계획 같은 산업화 정책에 따라 모든 자본이 산업, 특히 수출산업 부문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집주인들이 주택구입 과정에서 모자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 집을 세놓은 관습이 생겨났다. 주택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때이므로 집주인 입장에서 월세보다는 목돈이 들어오는 전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보증금이 이자를 내지 않은 은행 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당장의 현금으로 구매할 수 없으나 본인의 경제력보다 양질의 주거서비스를 구매할 있는 등 장점이 많았다.

이처럼 전세는 주거공간을 매개로 개인끼리 돈(보증금)을 주고 받는 사금융이나 대출 개념이 강하다. 사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지혜를 빌리지 않더라도 금융의 가장 큰 특성은 불안정성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금융은 자금융통의 약자다. 즉 금융은 곧 신용() 창출과정이다. 공장처럼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신용을 창출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와는 달리 뚜렷한 실체가 없어 수시로 출렁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전세시장은 사금융, 사채 시장 성격이 강해 불안정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 입주단지를 보면 전세시장과 매매시장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매매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 반면 전세가격은 주변시세의 반 토막 수준으로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기간에 한꺼번에 입주하는 신규 입주물량은 짧은 기간에 스톡(stock)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 일시적으로 전세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입주물량이 몰리는 지역에서는 입주초기에 전세가격이 급락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만약 월세시장이라면 이처럼 큰 변동성을 낳지는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도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상 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매수자들이 움직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매매시장에서는 수요자들이 미래에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매입 시기를 미루면서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전세시장은 매매와는 달리 단기적인 수요 조절이 힘들어 비탄력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세는 마치 김치나 라면, 쌀처럼 생필품과 비슷하다. 정부 정책의 효과를 기다리며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전세시장 따로 매매시장 따로>
집값은 떨어지고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 비율)이 치솟고 있다. 서울지역의 경우 전세가 비율은 지난 8월 기준으로 58.1%(전국 64.5%)를 기록하고 있다. 4년 전인 200938%에 비하면 거의 20% 포인트가 올랐다. 일부 단지에서서는 전세가비율이 70~80%에 육박하는 곳도 많다. 200110월에 서울 전세가 비율은 64.6%(전국 69.5%), 강북지역의 경우 70%를 넘어서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약간 낮은 수준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전세가 비율은 전 고점을 돌파할 전망이다.

보통 과거에는 전세가 비율이 60%를 넘으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곤 했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말하자면 60%(60% rule)이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전세로 사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만하더라도 집을 살 여력이 되지 않아서 집을 사지 못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세입자들이 집값이 떨어질 까 겁이나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산다. 또 하나 전세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세입자들이 이미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래서 빚을 더 내어서 집을 사려고 해도 상환능력이 여의치 않다. 이미 대출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렌트푸어 입장에서는 전세가격이 올라도 매매수요로 전환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더욱이 지금 전세대출을 연3%대의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대출이 가능해서 집을 사지 않는다. 구매력이 되어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도 집을 사지 않고, 구매력이 되지 않아서 월세로 살아야 할 사람들도 전세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시장이 병목현상이 나타난다.

  <하락기에 전세살이는 또 다른 위험 자산 구매행위>
세입자들은 전세살이를 집값 하락의 위험을 회피하는 안전자산 구매행위라고 판단한다. ‘전세살이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집주인의 부실이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월세살이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집값 하락기에 전세구매는 또 다른 위험자산을 구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전세 계약 순간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채권자, 반대로 집주인은 채무자가 된다. 사실 세입자는 이자 대신 공간을 이용하는 대가로 돈을 무이자로 빌려준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줄 때 빚을 제대로 갚을 지 위험을 꼼꼼히 따진다. 그런데 요즘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집값 하락 위험을 고려할 뿐 채무자의 빚 상환 불능이라는 위험에 대해서는 덜 신경 쓰는 것 같다. 전세금 지불행위가 사금융 형태의 '대부'(loan)라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요즘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웃도는 아파트단지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은행으로 치면 세입자가 LTV(담보대출인정비율)를 초과해서 집주인에게 대출해준 것과 같다.

전세가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세입자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앞으로 집값 하락세가 계속되면 세입자에게 불똥이 튀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 매매시장과 전세시장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깡통주택''깡통전세'로 쉽게 이어진다. 전세가 여전히 임대차의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집주인의 불행은 세입자에게도 불행이 된다. 때문에 전세 거주자와 집주인은 싫든 좋든 공동 운명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월세는 집값 하락으로 집주인에게 부실이 생겨도 세입자에게 많이 전가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점에서 대해서는 매매시장과 월세시장은 어느 정도 분리되는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택시장에 월세화시대가 오면...>
현재 우리나라 주택임대시장은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주택전세의 월세 전환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세 유통물량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전세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모든 주택이 월세로는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는 당분간 보증부 월세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전세, ()전세, 월세가 공존하는 다층적(多層的)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에서 월세로 바꾸려면 빚을 돌려줘야 하는데 대형 고가아파트는 전세금 반환이 여의치 않다. 빚을 상환하기 위해 빚을 조달해야 하는 꼴이다. 저가 소형 주택은 전세가 월세로 넘어가는 현상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이미 저소득층 거주지 중심의 소형주택시장에서는 전세는 거의 사라지고 월세만 남아 있는 곳들이 많다.

만약 앞으로 월세계약이 크게 늘어나 보편화된다면 우리나라 주택시장 뿐 아니라 서민층 복지시스템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특히 저소득층의 교육제도나 의료 등 복지체계를 송두리째 수술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선진국이 모두 월세니까 우리나라가 월세로 바뀌면 주거문화가 선진화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오해가 될 수 있다. 이는 집 없는 사람들이 치솟는 주거비 때문에 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은 우리사회는 월세화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세화를 늦추는 제도적 완충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령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방식을 현재 월세 중심에서 전세비중을 더 늘린다든지, 전세로 내놓은 집주인에게 좀 더 세금 인센티브를 주고, 월세에 대해서는 투명한 과세를 하는 세밀한 접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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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부동산 시장을 체계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투자 신호등이 되고자 합니다. 객관성, 공정성, 그리고 도덕성. 이 3가지 철학을 바탕으로 아직 어려운 영역인 진정한 부동산 애널리스트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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