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대의 종말이 의미하는 것

2015-03-23 | 작성자 아기곰 | 조회수 10,320 | 추천수 167

월세 상승 불가피…생활비 중 주거비 비중 늘고 저축률 하락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걸려 있는 게시물.


전세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시장에서는 전세 매물을 찾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마다 전세를 구해 달라는 대기자가 몇 명씩 있고 어쩌다 대출이 들어 있지 않은 전세라도 나오면 서로 차지하려고 달려든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집주인이 원하는 전셋값을 다 줄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깎기 위해 머뭇거리는 사이 해당 전세 매물은 다른 대기자의 차지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진 상황이니 전셋값이 치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세 수요가 전세 공급보다 많은 지역은 84.9%인데 비해 적은 지역은 2.3%에 불과해 극심한 수요 초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지수화한 전세 수급 지수는 182.6로, 2000년 1월부터의 평균치인 153.6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이론상 200이 최대치). 이런 현상은 서울 지역이 더 극심하다. 전세 수급 지수는 192.0으로, 역사상 평균치(2000년 1월~2015년 2월)인 145.9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도 전셋값 상승 국면이 상당히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전세 물량 부족은 주택 거래 자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 주택 실거래를 공개하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아파트 시장에서 지난 1~2월 거래된 전세는 총 2만3515건이다. 4년 전인 2011년 1~2월의 2만4984건에 비해 거래량이 6%나 감소했다. 이에 비해 매매 건수는 같은 기간 28%나 늘어났고 월세는 무려 두 배가 넘는 116%나 증가했다.

전체 주택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의 60.4%에서 2015년에는 48.7%로 낮아졌다. 그 대신 같은 기간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29.2%에서 32.0%로 높아졌고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4%에서 19.2%로 폭발적으로 뛰었다. 결국 전세 거래는 점점 줄어드는 만큼 그 수요가 매매 시장과 월세 시장으로 나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수요, 매매와 월세로 갈라져
그런데 같은 서울이더라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고 있다. 강남구의 전세 비중은 2011년 65.9%에서 2015년 51.5%로 크게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매매 비중은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뛰어난 학군이나 출퇴근의 편의성 때문에 주택 수요는 충분하지만 비싼 집값이 아직까지는 이들 수요를 매매 시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구에서 세를 살고 있는 임차인의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 집을 가지고 있고 자녀의 학업 기간 동안만 강남구에서 살려는 성향이 큰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월세 비중이 13.0%에서 27.5%로 크게 높아졌다. 전세 물량이 없어 전세를 얻지 못하더라도 이들 실수요자들은 매매 시장을 두드리는 대신 월세를 선택한 것이다. 2015년 2월 기준으로 강남구 아파트의 임대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달해 서울 평균 29%를 크게 웃돌고 있다. 3월 들어서도 이런 경향은 더욱 거세져 월세 비중이 39%에 달하고 있다. 강남구뿐만 아니라 집값이 비싼 서초구나 송파구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종로구는 전세 수요자들이 대거 매매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1년 전체 거래 건수에서 58.2%나 됐던 전세 비중이 2015년에는 36.5%로 대폭 낮아졌다. 그 대신 매매 시장의 비중은 28.5%에서 40.1%로 크게 높아졌다. 또 월세의 비중도 13.2%에서 23.4%로 대폭 뛰었다. 월세 비중이 큰 것은 강남구를 포함한 서울 전체의 흐름과 같지만 눈여겨볼 것은 매매 시장이다. 월세 시장이 10.2% 포인트 비중이 더 커진 것에 비해 매매 시장은 그보다 더 큰 11.6% 포인트만큼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전세 시장에서 매매 시장으로 실수요자가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강남구와 달리 월세 시장보다 매매 시장으로 실수요자 더 몰려간 이유는 전셋값과 매매가의 차이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줄어들었고 강남구 등에 비해 매매가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줄어든 전세 수요자가 매매 시장으로 돌아선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강서구·중랑구·동대문구가 있다.

결국 현재의 시장은 투자자보다 전세난에 내몰린 실수요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매매 시장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전세 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사철을 중심으로 전셋값과 매매가가 동반 상승하다가 비이사철에는 주춤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내 집 마련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비이사철에 나오는 매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전세 시대가 종말을 고한다면 그다음은 어찌 될까. 전세가 없는 다른 나라와 유사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은 소유가 아니라 거주 개념’이라고 하는 선진국조차 평균 자가 보유율은 70% 정도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10명 중 7명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3명만이 무주택이라는 의미다. 이들의 대부분이 주택을 소유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소유욕이 많아서가 아니라 월세 부담 때문이다.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월세를 내지 않으려면 집을 사야 한다. 이때 월세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지 않더라도 집을 사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선진국에선 생활비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주거비다. 자기 소득의 33~40%에 이르기까지 한다.

반면 한국은 전세라는 제도가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주거비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세와 경쟁 관계에 있는 월세 수준 또한 낮은 편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 대비 월세 수준이 가장 낮다. 월세 약세의 흐름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월세를 주려는 임대인(공급)은 많은데 월세로 들어오려는 임차인(수요)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세 시장과 정반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기 때문에 월세가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내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전세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추면서 월세도 점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 지역이 동시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은 지역부터 상승하게 된다.


월세 부담 커 집 사는 선진국
월세 제도가 정착하게 되면 사회 풍속도 많이 바뀔 것이다. 목돈이 필요한 전세 제도가 없어지면서 결혼 비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부모로서는 노후 자금에 여유가 생기게 되지만 자식으로서는 부모로부터의 증여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자산 형성이 늦어진다. 더욱이 전세 제도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은 매달 상당액의 월세를 내야 한다. 저축할 여력이 그만큼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률도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다. 저축할 여력도 줄어들지만 전세금 인상을 대비해 저축을 무리하게 해야 하던 절박함도 같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주택의 수익성 부동산화도 하나의 추세가 될 것이다. 투자금 대비 6%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선진국에 비해 한국 주택의 임대 수익률은 4%도 맞추기 어렵다. 월세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세가 점점 오르면 주택도 상가나 오피스텔과 같은 수익성 부동산만큼 수익률이 나오게 된다.

결국 월세 시대의 도래는 이미 집을 소유한 기성세대와 집을 가지지 못한 세대 간에 자산 격차를 벌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에게는 대출을 끼고 자기 집에서 살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월세를 주고 남의 집에서 살든지 두 가지 선택밖에 주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전세라는 임차인에게 유리한 제도가 없어지는 후폭풍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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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마케팅 회사의 최고재무관리책임자(CFO)로 재직중이며, 국내 최대 부동산 동호회인 '아기곰동호회'운영자이자, 저명한 부동산 칼럼니스트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없는 객관적인 사고와 통계적 근거를 앞세우는 과학적 분석으로 부동산 기조를 정확히 예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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